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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배당주

주주환원 끝판왕 ; 보잉 자사주 매입 Stock Buybacks Good or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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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 UNH, 보잉, 스타벅스, 맥도날드, 필립모리스, 홈디포 등 기업들의 공통점이 무엇인가?
전세계 사람들이 모두 알면서 ‘우량한’ 것으로 인지되는 기업들이다. 하지만 동시에 재무적으로 매우 취약한 기업이기도 하다. 이들이 순자산, 즉 총자본은 ‘0’에 가깝거나 때때로는 마이너스(완전 자본잠식)를 오간다. 이들이 돈을 못 벌어서일까? 아니다. 오히려 돈을 너무 잘 벌어서 주주들에게 극단적으로 환원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지금 와서 재평가한다면, 이들 기업은 우량하면서도 매우 위험한 기업들이다.

 

보잉은 지난 2년간 자사주 117억달러 어치를 사들이다가 지난해 4월 737맥스 기종 결함 사태가 커지자 중단했다. 보잉은 코로나19 사태로 공장 가동이 멈추고 주고객인 항공사들이 여행자 감소로 타격을 입자 미국 연방정부에 600억달러(약 74조원) 지원을 요청했다.

트럼프 대통령, "보잉을 절대적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미국 산업에서 항공산업의 비중은 절대적이기 때문입니다. 제조업 생산에서 항공기와 관련 부품업의 비중은 5.5%,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가 넘습니다. 창출하는 일자리는 250만 개, 업체는 만 7천 개에 달합니다. 군용기와 로켓을 생산해 국방과도 직결됩니다.

실제로 보잉은 최근 항공업계에 600억 달러 자금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항공업계는 따로 또 500억 달러 요청했고요. 합하면 우리 돈으로 130조 원이 넘습니다.

그런데 이 항공업계가 지난 10년간 잉여 현금흐름의 96%를 자사주 매입에 썼습니다. 델타, 아메리칸항공, 유나이티드, 사우스웨스트...이 4대 항공사는 지난 5년간 390억 달러 규모 자사주 매입했고, 보잉은 혼자서 350억 달러 매입했습니다. 대략 100조 원을 주식에 쏟아부었습니다.

 

자사주 매입이 무엇인가요?

주식회사는 벌어들인 순이익 일부를 배당금으로 주주들에게 나눠줍니다. 자사주 매입이란 말 그대로 기업이 자기 회사 주식을 사들이는 것을 말하는데, 배당금과 마찬가지로 순이익 일부를 주주들에게 나눠주는 방법의 하나입니다. 회사는 순이익을 배당금으로 나눠줄 수도 있고 자사주 매입을 통해 나눠줄 수도 있는 것이지요. 주주 입장에서는 회사가 어떤 방법을 선택하든 차이가 없습니다.

왜 자사주 매입을 할까요?

앞서 얘기한 것처럼 표면적으로 자사주 매입은 배당과 마찬가지로 회사가 벌어들인 돈의 일부를 주주에게 나눠준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그렇다면 배당을 하지, 왜 절차가 복잡하고 제약도 많은 자사주 매입을 할까요.

배당은 규칙적으로 지급되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배당금이 갑자기 크게 바뀌는 것에 대해 주주들이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그래서 경영자는 긴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배당을 줄이려 하지 않고, 배당 수준을 꾸준히 유지할 수 있다고 확신하지 않는 한 배당을 늘리려 하지도 않습니다. 반면 주주들은 자사주 매입을 일시적인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기업은 시기와 규모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자사주 매입을 선호하는 겁니다. 이익의 변화가 큰 기업일수록 섣불리 배당을 해서 지속적으로 부담을 느끼기보다 필요할 때 자사주 매입을 하는 것이 낫겠지요.

자사주를 매입하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주가가 저(低)평가돼 있다는 것을 시장에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둘째, 지배 주주의 경영권을 안정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셋째, 남아도는 현금을 소모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렇듯 회사가 자사주 매입을 하는 이유는 복합적입니다. 자사주 매입의 진정한 의미가 어떤 것인지, 좋은 소식인지 나쁜 소식인지는 기업이 처한 여건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자사주 매입에 대한 평가는 어디까지나 투자자 몫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기업의 흥망은 늘 있는 일이지만, 보잉의 몰락에는 상식에 반하는 점이 많다. 보잉은 2019 회계연도에 6억3000만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최근 수년 새 보잉의 주력 생산기종인 737맥스 기종이 잇따라 추락했고,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올해도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이지만 보잉이 파산위기에 내몰릴 정도로 취약한 기업은 아니다. 작년부터 영업실적이 악화되고 있지만 그 이전에는 1998년부터 2018년까지 21년 연속 흑자를 기록했고, 그 기간 동안의 당기순이익 누계는 746억달러에 달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벌어놓은 돈을 생각하면 한두 해의 실적 부진으로 보잉이 파산위기에 내몰렸다는 점은 상식적이지 않다.

월가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주주친화책 중단이 증시에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기업들이 자사주 매입에 쓰는 돈이 미국 증시의 순매수 수요 중 상당 부분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기업들의 배당금 지급 중단에 따른 배당주 투자수요 위축도 예상된다.

보잉의 문제는 그동안 벌어놓은 돈이 회사에 쌓여있지 않다는 데 있다. 위에 도표를 보자면 
2018년 기준으로 R&D에 투자하는 자금이 3억달러도 되지 않는데, 주주 배당금과 자사주 매입은 무려 12억 달러가 넘는다. 아무리 주주친화적인 기업이라고 해도, 지금과 같은 코로나를 만나면 바로 골로가는 시스템이었다. 

보잉의 몰락은 작년부터 시작된 영업부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우량기업으로 불리면 돈을 잘 벌었던 이전 20여년 동안에 잉태됐다. 연속 흑자행진이 시작되기 직전이었던 1997년 말 보잉의 총 부채는 250억달러였다. 이후 21년 동안 연속 흑자를 기록했지만 2018년 말의 총 부채는 1169억달러로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자기자본은 129억달러에서 4억달러로 줄었다. 이상하지 않은가? 연속 흑자를 낸 21년 동안 부채는 4배 넘게 늘었고, 자기자본은 96%나 쪼그라들었다는 것이다.

이런 비상식은 과도한 주주환원에서 비롯됐다. 보잉은 벌어들인 돈을 모두 주주들에게 돌려줬다. 배당금을 계속 지급했고,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했다. 자사주 매입 후 소각은 자기자본을 줄인다. 이익만 자사주 매입에 사용한 것이 아니라 빚까지 내면서 자사주를 사서 소각했다.

보잉은 자본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이런 행동을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통적 제조업은 공급과잉에 시달려왔다. 
미국의 주가는 얼마 전까지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지만 설비가동률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과잉생산이 존재한다면 사업기반을 조금 줄여도 당기순이익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자본의 효율성을 나타내는 ROE(자기자본이익률=당기순이익/자기자본)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 ROE 계산에 사용되는 분모가 작아지기 때문이다. 빚까지 내면서 자사주를 매입했던 것도 경제적으론 합리적 선택이다. 최근과 같은 저금리 환경에서는 부채에 지급하는 이자율이 기업이 주주들에게 지급하는 배당수익률보다 낮았다. 보잉은 미국 증시에서도 손꼽히는 배당주였는데,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하면서 남은 주주들에게는 더 큰 규모의 배당금을 지급할 수 있었다.

자본 효율을 높이기 위해 합리적으로 행동했지만 그 결과는 자기자본의 과도한 축소로 귀결됐다. 증식을 추구하는 자본의 속성에 반하는 행동이 주주자본주의라는 이름으로 행해졌던 셈이다. 자기자본은 위기 때 기업이 기댈 수 있는 안전망이다. 자기자본이라는 버퍼가 취약해진 21년 연속 흑자기업 보잉은 2019년 단 한 해의 손실로 자본잠식기업으로 전락했다. 몰락 한 해 전인 2018년 보잉의 ROE는 985%였다. 자기자본이 너무 작아졌기 때문에 나온 결과이다. 1000%에 육박하는 ROE가 희극이라면 한 해 만에 부도위기에 내몰린 21년 연속 흑자기업의 추락은 비극이다. 극단의 자본 효율성만 추구하며 주주의 이익에만 봉사하는 주주자본주의는 자본주의의 본성에 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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